성배와 전설


9. 성배 탐색의 완성

(1) 퍼시벌이 당한 유혹의 고통

성배를 찾아서 떠난 기사들은 거의 모두였다.  스스로 훌륭한 기사라
고 생각되는 사람은 그 성배의 영광을 놓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웨인, 랜슬롯, 갤러헤드, 퍼시벌, 보호트, 우웨인, 가에리엣, 리오
넬 등등 당대의 영웅들이 모험여행을  시작하였다.  전설의 원전에는
각 기사들의 모험담이 수없이 나온다.  거의 대부분을 그들의 이야기
로 채워졌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 이야기들을 모두 열거하지
않겠다.  다만 바그너의 [파르지팔]과 관련이  있는 부분인 퍼시벌이
당한 유혹에 관한 이야기만 적어보겠다.

퍼시벌이 성배를 찾아서 모험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침 어떤 섬
에 도착하여 배를 기다리고  있는 중 범선(帆船)이  하나 나타났으며
상당히 큰 범선이지만 타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아
가씨가 갑판에 앉아 있었고 퍼시벌은 다가가서 그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가씨는 퍼시벌이 물어보는  복음서에 관한 이야
기는 피하였지만 한참이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
다.  아가씨는 스스로 가련한 여인으로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퍼시벌
의 도움을 요청하였고, 퍼시벌은 그렇겠다고 대답을 하였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범선내의 그늘로 가서 퍼시벌은 잠이 들었다. 한
참을 자고 난 후 시장끼를 느낀 퍼시벌은 먹을 것을 청하였다.  그녀
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요리들을  가져왔고, 또한 퍼시벌이 지금까지
보지도 마시지도 못한 아주 훌륭한 포도주와  독한 술을 가져와서 서
로 권하면서 마셨다.  술기운이 온몸으로  뻗어나가자 그는 더워지기
시작하였고 앞에 있는 아가씨가 세상의 어떤  미인과도 비교할 수 없
을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감미로운 말씨와 행동은 퍼시
벌이 꼼짝 못하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그녀에게 사
랑을 청하게 되었고 퍼시벌의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본 그녀는
퍼시벌에게 요청을 한다. 

"퍼시벌님, 이제부터 당신이  제 사람이 되겠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항해서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그리고 저의 명령에만 따르겠다고 약
속하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예요."

퍼시벌이 그러겠다고 응답을 하자 그녀는 다시 충실한 기사로서 약속
하시는 것인가요? 라고 확인하였다.   퍼시벌의 대답에 그녀는  모든
것을 승낙한다고 하면서 그에게 그 서약을 지킬 것을 거듭 확인한다.

그녀를 침대에 누인 후 퍼시벌도 그 옆에 누우려다가 마침 그의 칼이
땅 바닥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그  칼을 집어서 침대 옆에
기대어 세워 놓으려고 하는  순간, 칼에 새겨진  진홍색 십자가가 눈
에 들어왔다.  그는 모든 것을 깨닫고 바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와,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그었다.  

갑자기 그가 있던 방이 무너지고 짙은  연기와 구름이 몰려와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졌고 사방에는 고약한 악취가 풍겨 마
치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자하신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여, 이곳에서  제가 죽도록 내버려두
지 마시옵고, 당신의 은총으로 저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아
니하면 저는 죽나이다."

아가씨가 외쳤다.  "퍼시벌, 그대는 나를 배반했어요!"  그녀는 범선
을 혼자 타고 떠났는데, 그녀가 탄 범선을 어마어마한 폭풍우가 쫓고
있어서 곧 표류할 것 같았다.  그는 그가 유혹에 빠졌던 것을 돌이키
며 외쳤다.  "아, 슬프도다!  나는 지고 말았구나!"

그는 칼을 꺼내어 자신의 몸을 세게 내려쳤다.  칼을 그의 왼쪽 허벅
지에 박혔고 피가 흘러 나왔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여, 이것이 제
가 당신께 저지른 죄에 대해 제가 내리는 벌입니다."  

또다시 외치기를 "아아, 보잘 것 없도다! 한번  잃고 나면 그 무엇으
로도 회복할 수 없는 나의 순결을  잃어버릴 정도로 유혹에 이끌렸으
니, 나는 가장 비천한 자 였도다!"  그는  자신의 상처보다도 하나님
이 그에 대하여 노하신 것에 대하여 크게 슬퍼하며, 옷차림을 최대한
단정히 하고 하나님께 간구 하였다. 

이 퍼시벌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는  바그너의 [파르지팔] 2막에서 쿤
드리에게 유혹을 당하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다만  찰라 적인 깨
달음을 전설에서는 칼에 새겨진 십자가를  보고 얻게 하였고, 바그너
는 그것이 암포르타스의 고통을 상기시켜 이성을 찾도록 하여 종교적
인 색채를 퇴색시켰다고 볼 수 있다.


(2) 선택받은 기사들 

성배를 찾아서 무수히 많은 원탁의 기사들이 신앙과 모험의 편력여행
을 하였지만 성배에 도달한 기사는 단지 세 사람 밖에 없다.  갤러헤
드, 퍼시벌  그리고 보호트, 그들은 사전에 선택을 받았고 준비된 기
사들이었다.  

최고의 기사 랜슬롯은 탐색 중 성배를  가까이 볼수 있었으나 그에게
는 세상에서 지은 죄  때문에 자격이 되지 않아서  온몸의 기가 빠져
쓰려져 버렸고 (혹 다른 판에서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었다고
도 함) 다른 기사들도 자신들의 죄 때문에 성배의 탐색여행에서 탈락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선택받은 세 기사에  대해서는 [성배의 탐색]
이란 책에 에티엔 질송(註: Etienne  Gilson, 884-1978, 프랑스의 철
학가이자 중세 사상가) 의  이론이 나와 있어서  그대로 옮겨 보도록
하겠다.

에티엔 질송은 성 베르나르의 학설과 일치되는, 은총에 대한 매우 명
확한 어느 이론이 성배의 탐색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튼튼한 갑옷처럼
뒷받침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이론의 세부사항으로  들어가진
않겠지만, 세 명의 기사 사이에 정립된 상하관계는 은총과 공로와 신
의 의지와 인간의 자유에  관한 이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보호트, 야성적이고 건장한 그는 이 세 영웅  가운데 가장 낮은 위치
에 있다. 그가 순결하지만 동정이 아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은
총을 덜 받고 있으므로, 긴 투쟁을 거치고  나서야 완성과 행복한 영
상(註: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가리킨다.)을  보는 데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강한 유혹들을 물리치고 힘든  고통들을 겪어나가던 그는
어느 날 형제애와 좀더 고귀한 자비의  의무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
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어서 그는  명예와 형제애 사이에
서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것은 그의 형이 그에게
복수를 하려고 할 때, 즉 그가 결투를 하도록 그의 형이 그를 도발하
는 장면에서이다.  하나님만이 이 잔인한 싸움을 멈추게  할 수 있었
을 것이다.  

보호트는 금욕의 힘과  결연한 행위로, 반항하는  기질을 이겨내야만
한다. 성배를 보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매우 크나, 은총에 의해서 그
의 의자가 고무되었을 때 이외에는 그것을 원해선 안 된다.  그의 두
동료보다 보호트에게서 더욱 느리게 작용하는 은총은 그가 앞으로 내
딛는 걸음마다 노력이 따르는 길을 가도록 그를 내버려둔다.

퍼시벌은 보호트보다 훨씬 유리하게 배려되어  있어, 그는 가는 길도
훨씬 가볍다.  그의 내면적인 투쟁이 덜  힘들도록, 그리고 자신에게
고행을 하기 위한 규율이나 의지 자체를  개선하기 위한 행위들을 부
과하지 않아도 되도록,  은총이 그를 충분히 변화시키고 그에게 생기
를 준다.  그도 또한 유혹을 겪고, 가까스로 그 유혹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 유혹을 이기려고 스스로 노력해서가 아니라, 신의 손에 의
해서 적절한 순간에 그 유혹을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완성으로 이
르는 길을 가는 데 있어서도 그는 활동적인   보호트보다 더 앞서 있
다.  퍼시벌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거의  자발적으로 주어진
선물로 존재한다.  그의 마음은 그가 이미 성배를  보기 위한 문턱에
이르러 있을 만큼 충분히 순화되어 있다.

이미 운명이 예정되어 있는 세 번째 기사,  즉 랜슬롯의 아들 갤러헤
드만이 유일하게 완전한 사람이다. 그의 두 동료가 성배의 전례가 그
들에게 보여줄 미완성적인 영상에 머물러  있을 동안, 그만이 하나님
의 심오한 신비가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아무런 유혹
도 겪지 않으며, 그의 동정엔 어떤 힘이 있어 아무런 위험도 겪지 않
는다.  은총은 애초부터 그를 선택했으며, 그의 지위를 매우 높이 끌
어올려, 그가 완전한 사랑을 소유하도록 미리 운명 지워 놓았다.  

그는 완벽하게 투명한 사람이어서, 그 안에는 길을 안내하고 그 자신
의 의지를 인도하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퍼시
벌이 유연하게 은총의 힘에 동의하고 은총이  그를 인도하는 대로 산
것 이상으로, 즉 그러한 순응성조차도  넘어서서, 갤러헤드는 완전히
자신을 내 맡긴다.  

하나님의 의도와 피조물의 자유 사이의 일치 속에서, 신이 이미 모든
일을 정해놓은 것임이 또 한번 드러난다.  갤러헤드 에게 '주어져 있
는' 지고의 사랑, 제일 높은 사랑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일치는 일종의 합체이며,  가장 높은 성덕(聖德)이다.

그렇지만 갤러헤드가 퍼시벌처럼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완성시키기
위해 진보를 할 필요도 없고, 극복해야  할 약점도 없으며, 보호트처
럼 스스로에게 고행을 부과해야  되는 일도 없다면,  왜 그는 성배의
비밀을 보기 전에, 그리고 그것을 본 후  죽고자 하는 소망이 받아들
여지기 전에 그렇게도 긴 방랑의 길을 편력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우선 그가 유한한 인생을 살도록 되어 있는 인간적 피조물(被
造物), 길을 가고 있는 한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의
성덕(聖德)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그가 다른 영혼들,  즉 죄
지은 형제들과 은총에 의해 사함을 받은  형제들과 같이 머물러 있어
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그가
떠나가는 것을 슬퍼한다.  

랜슬롯에게는 이 선택된 아들과 몇 주일 함께 항해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고, 보호트와 퍼시벌은 모험의 숲  속에서 그를 부르며, 그
를 따라가려고 시도한다.  이 성자에게는 빛이 스며들어 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된다.  은총이 그 안에 너무도  충만하게 주어져 있
어서, 이번에는 그가 은총을 베푸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이며 랜슬롯의 육체적인 아들인 갤러헤드는 예수 그리
스도의 살아있는 영상처럼 나타난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
처럼, 여러 세기 전부터 그를 기다린다. 마치 예수가 모여 있는 사도
들에게 왔던 것처럼, 성신이 그들 사이에  내려왔던 것처럼, 그는 성
신강림 대축일(聖神降臨 大祝日)에 불의 갑옷을  입고 아서왕의 궁전
에 나타난다.  

그는 그 나라의 이상한  사건들을 해결하고, 죄인의  세계를 구한다.
그리고 그가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 '왕'의 관이 씌워진다.  그러나
그는 신이 아니다.  그는 '신분의 차이'로 그의 모델(즉 예수 그리스
도)과 구별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유사할' 뿐이다.  그는 예수 그리
스도의 가장 완벽한 모작(模作)이며, 신의  사랑으로 완전히 다시 만
들어지고 구세주와 일체가 되는 피조물이 보여주는 모범이라 할 것이
다.

성 베르나르에 의하면 다른 두 기사는 이  땅 위에서 접근할 수 있는
신앙의 단계를 나타내는 반면, 갤레헤드는  우리가 상상으로 밖에 알
수 없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최후
의 비밀로 안내하는 법열 직후에 죽는다.


(3) 성배 탐색의 완성(完成)

여러 가지 모험을 하면서 여행을 하던  갤러헤드는 어떤 아가씨에 의
하여 화려한 범선이 있는 곳으로 인도된다.  그곳에는 이미 퍼시벌과
보호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그 동안 서로의 모험담을 이야
기하면서 범선에 올랐다. 범선은 돛을 올리고 밤 낯으로 항해를 했고
어떤 미지의 섬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또 다른 범선 한 척이 있었다.  그 새로운 범선으로 다가서
자 거기에는 확실한 신앙을 갖지 못한 자는 범선 위에 오르지 말도록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아가씨는 자신의 퍼시벌의 누이라는 사
실을 밝히고, 함께 배 위에 올라갔다.  배 안에는 은(銀)으로된 탁자
위에 붉은 비단 천으로 쌓인 성배가 있었다.  그들은 곧 성배에 경배
를 하고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 바람이 다시  불어와 그들이 탄 배
는 바다를 가로질러 어느 도시에 상륙하였다.  그들은  성배를 그 도
시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