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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ozart(2004-01-01 01:04:28, Hit : 4232, Vote : 706
 파르지팔을 들으며....



늘 이맘때면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멜로디를 거부하질 못해
요 며칠째 다시 파르지팔에 젖어 있는 중에.. 밑에 써주신 글
' 오페라의 즐거움 ' 도 다시 읽어보고 또 이책 저책 들여다
보면서 마음에 와닿는 글이 있어 옮겨봅니다.

이 책의 부분부분을 옮기면서도 마음속에서 감동과 슬픔의 물결이
일렁이니 간간히 숨을 고르지 않을수 없습니다. 바그너의 음악은
정말 음악이 아닌 듯.. 그것은 삶 자체이고 정신인듯.. 그를 듣다
보면 분명히 음악은 삶과 속속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다 절
실히 실감하게 됩니다.

각별히 한해를 마감하는 중에 음악이 제게 전해주는 것은 일종의
"계시" 와도 같습니다.. 그를 받아들이는 제 마음은 그렇게 느껴집
니다. 하지만 몇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다만.. 그가 전해주는
멧세지에 고개숙여 순종하며 올 한해 역시 음악과 삶에 꾸준히 헌신
해야 겠다는 생각이 조용히 내려 앉습니다. 하루 중 아주 짧은 시간
잠깐 잠깐 접하곤 하지만 음악이 들려오게 되면 뇌리속에 그런 생각
이 박히고 박히고... 또 박히게 되는군요.

감사를 드립니다..  
음악에 감사하고. 바그너에 감사하고, 연주자들에 감사드리고...
거듭 감사를 드리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또 성주님과 성주님의 가정에 건강과 평온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늘 기쁨과 풍요로움이 깃드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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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은 음악사상 특이한 위치에서 매력을 지니고 있어, 많은 평자들이

각각 특이한 방법으로, 또한 열정에 따라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여 다채로운 성과를 거두

어 온 것이다. ㅡ 이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바그너에 대한 연구문헌이 입증

하고 있다. 바그너의 작품상의 본질을 요약한다면, 그의 대부분의 자필각본의 내용이 항

상 동일한 주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들게 된다. 그 주요 과제는 사랑과 죽음의

신비, 헌신과 속죄의 신비이며, 무대의장(舞臺依裝)은 바뀐다 하더라도 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는 계속 같은 주제로 큰 감동을 안겨준다. 바그너는 일관하여 인간적 실존

이 지니고 있는 근원현상(根源現象)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낭만주의적 감정의 과

잉으로 초래된 난해한 점이나, 서로 모순된 부분이 드러나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의 작

품에서 순 음악적인 표현을 넘어서 하나의 정신적인 존속성을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 우주 개벽의 음악마술(音樂魔術) 』속에 등장된 바그너의 표제인물들은 장엄

한 의식속에서 불멸의 고결한 정신을 고조하고 있다. 이 감동이 그의 난해한 가사(歌詞)

에서 오는 지리함을 완전히 잊게 해준다.


<탄호이저>의 비너스와 <파르지팔>에 나오는 쿤드리스의 모습 사이에 점진적인 변화

가 다소 있었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이다. 또한 양식상의 차이는 있으나 젠

타, 엘자, 이졸데 사이도 유사하다. 이것은 남자 주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모두 하나의

비합리적인 정신적 목표를 향하여 노력을 거듭한 끝에 ㅡ <신(神)들의 황혼(黃昏)>의

신들의 경우도 그렇지만 ㅡ 파멸의 운명으로 몰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항상 보다 높은 질서에 의하여 결정된 것으로, 죽음에는 반드시 속죄의 보상이

따르고 있다. 따라서 바그너의 각본은 기쁨에 넘치는 자기 긍정과 인간은 죽음에 의하

여 허망한 무의 존재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 하늘로부터의 』사랑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신들의 황혼> 의 종말부에서, <니벨룽겐의 반지> 의

첫 부분과 같이 라인의 물결이 무대 위를 흐르는 장면이 나오자, 음악은 혼돈한 세계의

멸망감이 아니라 찬란한 장조의 가락으로 전개되는 브륀힐덴의 속죄의 테마로 끝을 맺

는다 !

바그너는 <파르지팔> 에서, 예술 속에서 종교의 대상이 될만한 성스러운 존재를 많이

추구하였으며, 무대를 교회로 꾸미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작품은 언어의 그림과

음악의 3개 요소로 조립된 융합체이며, 이와 같이 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심리적인 종

합효과가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따라서 바그너의 작품은, 특히 그 시대에 있어서는

최종적인 완성품으로 간주하여 마땅한 것이었다. 이 점에 관련하여 리하르트 슈트라우

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 『 ...바그너의 극시(劇時)와 가장 뛰어난

음악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의 기적의 총보(總譜)가 게르만 신회에 완벽한 예술상

(藝術象)을 부여하였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

  언어와 음악으로 성립된 오페라 드라마만이 음악의 정신세계에서 이룩할 수 있는 스스

로의 재생이라고 믿었던 작곡가 바그너가 가지가지로 작품을 시도하고는 찢어 없애며,

비상한 정신적인 긴장 속에서 창작에 몰두하였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질병에 관하여, 어디까지가 본격적인 질환이며, 또 어

디까지가 정신의 이상 상태에 대한 돌파구의 역활에 불과한 증상이었는지를 분별하기는

용이하지가 않다. 예컨대 그의 신경성장기능장애(神經性腸機能障碍)나 안면단독증(顔面

丹毒症)의 악화같은 것이 그것인데, 이것은 대부분이 예술가과 작품이 잘 융합되지 못하

여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관찰된 병세였다. 1856년 주네브에서 바그너를 진찰한 바이양

박사는 그의 벙세를 가장 옳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냉수요법(冷水療法)을 권하

며 바그너에게 장담하였다. 『 당신은 너무 신경질적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을 더욱

자극할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안정이 제일입니다.』 바그너는 확실히 어떤 물질에 대하

여는 지나치게 민감하였고, 소음에 대한 불안감과 색채 및 냄새에 대한 차별이 현저하였

다.『 사실상 내가 내 밖에 있으면 몸도 편안한데, 그런데 나는 나와 똑같이 있단

말이야 』(바그너가 뢰켈에게 쓴 편지, 1854년). 이 관계를 옳게 인식하지 않으면 바그너

를 오해하기가 쉽다 ㅡ 의사(푸슈만, 1873년) 중에서 괴팍스런 성격에 사치와 낭비를 즐기

고, 더욱이 다른 음악가들과 비교할 때 너무나 귀족적인 생활에 젖어 있는 작곡가 바그너를

정신이상자로 간주하는 사람이 있다.

  그 외에도 바그너는 관례적인 의학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인 이상상태

(異常狀態)를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서전 <나의 생애> 속에서 바그너는 1853년에

자신이 제노아에서 체험한 바 있는 『 몽유병(夢遊病)과 같은 상태 』에 대하여 술회하고

있는데, 그는 그러한 상태 속에서 강의 물결이 자기를 덮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다.ㅡ <라인의 황금(黃金)> 의 136 소절의 전주곡은 당시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바그너가 작곡할 때에는 어떠한 몽환지경(夢幻之境)에 있었는가에 대하여, 비이브리히의

산장에서 <마이스터징거>를 작곡 중이던 그를 가끔 방문한 바 있는 그의 친구 바이스하이

머 씨가 자신의 목격담을 남기고 있다. 그의 기술에 의하면, 바그너가 『 가장 고소된 상

태 』에 있을 때에는 몽유병자처럼 완전히 방심한 상태가 되어 무표정하게 강물이나 또는

마인쯔 대성당의 탑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1858년 8월 29일, 베니스를 처음 방문하

였을 때 바그너는 검은 곤돌라 앞에서 깜짝 놀랬다는 것이다. ㅡ 장례행렬이라도 보았는

지, 또는 그가 베니스의 거리에 처음 도착한 순간, 그 자신이 1883에 장의용(裝儀用)곤돌

라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미리 눈앞에 보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죽기 전날 밤, 그는 무엇엔가 끌려온 듯이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라인의 황금> 으로

부터, 라인의 아가씨들의 애창(哀唱)을 거듭 연주하였다.


   정답고 참된 것은
   오직 깊은 곳에 있으며,
   표면 위에서 기쁨에 넘치고 있는 것은
   거짓과 두려움뿐!


  그는 별자리중에서 큰곰자리를 좋아하여 『 보탄의 바겐(북두성) 』이라 즐겨 불렀으

며, 자기 이름과도 비슷하여 자기의 운명의 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늘을 향해 간

청하듯 두 손을 올리고 별에 대고 호소하였다. 『 나의 처와 아이를 지켜주시오, 착한

별님! 나는 그대의 뜻대로, 아무렇게 되어도 좋소. 』그리고 죽기 1년 전에는 자기 자신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탄식하고 있다. 『 나의 생애에서 예언자의 통찰력이 한창 피어

오르던 젊은 시절과 같이 젊고 활기에 넘치는 힘이 다소라도 나에게 남아 있다면... 불

은 아직 끄지 말아다오 ! 』

  반프리트의 조용한 환경 속에서 그는 주로 오전 중에만 일을 하였지만 1877년의 1년

동안 별다른 의무적인 일이 없는 한 <파르지팔> 의 작곡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5월 17

일, 영국을 여행 중이던 거장은 윈저성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환영을 받았다. 첫 번째

것으로, 연필로 스케치된 전주곡이 9월에 완성되었다. 당시 그는 잡다한 소화장애와

가슴의 통증으로심히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내가, 심장병만 없다면... 』하고 탄식

하였다 <파르지팔>의 제 2막 속에서, 표제의 주인공 파르지팔의 독백으로 나오는

『 내 마음속에 불이... 』라는 구절은 그의 자기진단적(自己診斷的)인 요소가 문장의

형식속에 표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등산 때나 식사 중에 잘 나타나는 협심증

(狹心症) 때문에 그는 큰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치료하면 주로 기름과 브랜

디에 의한 마사지 요법이었다. 이와 같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는 1879년 4월에 최후의

무대작품에 대한 구상을 완료하였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훨씬 이전에, 즉

1859년 5월 30일자로 마틸데 베젠돈크씨에게 쓴 편지 속에도 들어있다. 『 곰곰이 생각

해 보면, 암포르타스가 이 극의 중심이며 주인공인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것이 갑자기,

몹시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제 3막에서의 트리스탄의 역활이 또다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강조됩니다.』

  1880년, 상술한 증상과 새로 발병된 안면단독증(顔面丹毒症) 때문에 바그너는 또다시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었다. 1월초에는 나폴리 교회의 산 위에 자리잡은, 편백(扁栢)과

소나무에 둘러싸인 산장 빌라 당그리에서 언제나 눈앞에 전개된 바다 풍경과 불을 내뿜

은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보며 소일하였다. 그후 가족과 함께 아말피와 라벨로로 여행하

였는데, 바그너는 엷은 녹색으로 보이는 살레르노 만(灣)에서 수십 미터 가량 위쪽에

있는 고궁(古宮) 팔라쪼 루돌포의 정원에서 생생하게 만발한 장미꽃을 보고 매혹되었다.

『 클링조르의 마술의 화원을 발견함 ! 리하르트 바그너, 처와 가족과 함께. 1880년 5월

26일 』이라고 내빈명부에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건강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여기

서도 그의 안면단독증(顔面丹毒症)은 계속 재발되었고, 해수욕을 많이 한 결과 피부발진

(皮膚發疹)이 나타나 더욱 성가시게 되었다. 게다가 불면등까지 추가되었다. 바그너는

시에나를 거쳐, 10월 4일에 베니스에 도착하였다. 1858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한적하

고 가장 조용하였던 이 국제도시에 체류하며, 밤이 고요할 때 곤돌라의 뱃사공들의 호

소하는 듯한 외침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후 바그너는 가끔 이곳에 찾아왔다. 그는 이

곳에서 <트리스탄>의 제 2막을 완성하고 나서 해로운 정신적인 존재방식에 대하여 숙고

한 바 있으며, 수년 후에는 또한 이곳에서 육신의 죽음을 재촉해야 할 운명에 처해지는

것이었다. 뮌헨에 도착한 후, 바그너는 11월 12일 텅 비어 있는 궁정극장에서 국왕 루

드비히 2세만을 위한 특별연주회를 열어 <파르지팔> 의 전주곡을 지휘하였다.

  32세나 아래였던 국왕 루드비히 2세, 그의 바그너에 대한 총애가 싹트게 된 것은

1864년 5월의 일이었다. 당시 바그너가 집과 돈을 잃고, 또 모든 희망을 잃고 『 나는

끝장이다 ㅡ 나는 어디론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려야 한다.』 슈투르가르트의 한 여

관에 투숙하였을 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발생하였다. 바이에른 국왕의 내각비서관

이 바그너의 숙소를 찾아와 값진 다이아몬드 반지와 한 장의 사진을 전달한 것이다. 국

왕은 뷘에서 <로엔그린>을 보고 난 이후 바그너를 동경하게 되었으며, 5월 4일 처음으

로 그를 회견한 이후부터 평생의 우정을 맺었던 것이다. 바그너는 이로부터 경제적인 곤

궁 상태에서 풀려날 수 있었으며, 또 사실상 루드비히가 없었더라면『 반지 』도 바이

로이트도 없었을 것이다!



-- 중략 --



또다시 바이로이트의 화제로 돌아가는데, 바그너는 가슴을 죄어 누르는 듯한 증상이 되

풀이 되는 고통속에서도 쉴새없이 <파르지팔>의 악기 편성에 몰두하고 있었다. 1881년

봄, 그의 <신들의 황혼> 이 베를린에서 공연되어 대단한 갈채를 받았는데, 연주가 끝나자

바그너는 안색이 갑자기 창백하게 되어 무대에서 급히 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손

을 자기심장 위에 대면서 극장감독인 안젤로 노이만 씨에게 말했다. 『 이것이 어떻게

놀고 있으며, 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시겠소 ! 』『 세계와 이별하는 작품 』

이라고 자칭한 <파르지팔>은 1882년 1월 13일 팔레르모에서 완성되었으며, 그는 코지마

부인에 대한 헌정의 뜻으로 『 그대를 위하여, R. W. 』라고 서명하였다. 눈에 띄게 쇠

약한 이 노작곡가는 비상한 의지력으로 병든 육신을 혹사하여 이 총보를 완성시켰다. ㅡ

엷고 관능적으로 보이는 그의 입술에는 언제나 신랄한 냉소가 어려 있었고,『 먼 목표를

응시하는 푸른 눈동자는 꿈꾸듯이 멈춰 있었다. 』그러나 그가 즐기던 냄새맡는 담배와

그가 가려 마시던 샴페인은 손에서 놓아 본 일이 없었다. 바그너는 제 30회와 50회 탄생일

사이에 여러 번 죽음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그때마다 작곡 중에 있는 오페라가

미완성으로 끝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을 금하지 못하였으나 이미 그러한 근심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메시나, 나폴리, 그리고 베니스를 경유하여 다시 바이로이트로 돌아왔으

나, <파르지팔>의 연습이 그를 완전히 지치게 하였다. 16회의 공연은 청중에게 깊은 감

명을 주었다. 마지막 밤의 제 3막에서는 바그너 자신이 지휘봉을 들었다.



-- 중략 --


  1882년 9월 14일, 바그너는 가족과 함께 베니스로 떠났으며, 당지에서 팔라쪼 벤드라

민의 2층에 있는 방 18개를 선택하여 장기 체류의 장소로 삼았다. 그의 오랜 작곡 활동

에서 오페라 작곡을 계획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ㅡ 다만 기악곡을 작곡할

생각이었다. 그는 막중한 창작 생활의 고리를 매듭지었으며, 그의 『 총합예술(總合藝

術) 』도 완료된 것이다. ㅡ <탄호이저> 의 순례자의 합창에서 들려오는 참회의 소리는

<파르지팔>의 성 금요일의 마술속에 재현되어 있다. 더욱이 그가 이 마지막 작품의 장

래에 대하여 얼마나 염려하고 있었는가는 안젤로 노이만 앞으로 된 9월 29일자 서신속에

잘 나타나 있다.

『 오페라 <파르지팔> 은 나의 바이로이트에 있어서의 가장 뜻 깊은 작품에 들 것이

다...<파르지팔>과 더불어 나의 바이로이트의 작품이 존속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할

것이다. 물론 나의 작품은 나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없어진

후 누가 내 작품을 내 뜻으로 계속 이끌어 나갈 것인지 모르며, 또 고마워할 수도 없

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힘이 쇠퇴되어... 나 자신도 더 이상 이 작품의 연주를 수행

할 수 없게 된다면, 내 작품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이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수단을 나

자신이 궁리해야 할 것 같소. 』

  이제는 급하게 걸으면 호흡곤란이 나타났다. 하루는 마르쿠스 광장에서 교회악단이

<로엔그린> 의 일부분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이 음악 소리를 들은 바그너는

기쁨을 참지 못하여 그쪽으로 급히 달려가려 하였으나 숨이 막힐 듯함 호흡곤란과 가슴

의 중압감 때문에 근처의 과자점 라베나에 들어가 앉고 말았다. 특히 큰 혜성이 하늘에

나타난 밤이면 증세가 더욱 심하였으며, 주간에도 상태가 악화되어 『 가슴의 경련 』이

네 번씩이나 발작되는 날이 있었다.......



-- 후략 --



                               ㅡ 위대한 음악가들의 삶과 죽음 / 디터 케르너 지음
                                                                                      / 바그너 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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