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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비율 (2002-06-06 04:03:05, Hit : 4540, Vote : 748
 파르지팔과 통나무

숲 장면을 위해 진짜 통나무를 쓰기로 하고 나서
나는 왠지 이 소재가 파르지팔의 캐릭터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중국의 철학과 연관이 있다.

<朴>이라는 한자. 이는 세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1. 통나무
2. 나무껍질
3. 소박함
우리가 순박, 소박, 질박 등을 쓸 때 이용되는 한자가 바로 이 <朴>이다.
노자는 순박한 선비의 모습을 통나무(樸;=朴)같다고 도덕경에 쓰기도 하였으며
중국의 스님이자 화가였던 <석도(스타오)>는 <석도화론>이라는 책에 이렇게 쓰고 있다.

太古無法, 太朴不散, 太朴一散, 而法立矣.
태고무법, 태박불산, 태박일산, 이법입의.

法於何立? 立於一畵.
입어하입? 입어일획.

一畵者, 衆侑之本, 萬物之根, 見用於神, 藏用於人, 而世人不知.
일획자, 중유지본, 만물지근, 견용어신, 개용어인, 이세인부지.

所以一畵之法, 乃自我立.
소이일획지법, 내자아입.

立一畵之法子, 蓋以無法生有法, 以有法貫衆法也.
입일획지법자, 대이부법생유법, 이유법관중법야.

-해석-
태고에는 법이라는 게 없었다.
거대한 통나무(모든 가능성의 혼돈)은 원래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허나 그것이 일단 흩어지게 되면, 법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법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나는가?
그것은 일획(한번그음)에서 생겨난다.
일획이라고 하는 것은 뭇존재의 근본이요, 만물의 뿌리이다.
이 일획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작용을 신의 세계에는 잘 드러내지만 통속적 인간의 인식 앞에서는 그 작용을 감춘다. 그래서 세인들이 그 일획의 위대함을 잘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획의 법은 오로지 도를 체득한 자아로부터만 생겨나는 것이다. 이와같이 일획의 법을 세울 수 있는 자는 대저 무법(법이 없음)을 가지고 유법(법이 있음)을 창조하고, 무법을 가지고 모든 다양한 법을 꿰뚫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 이 의미심장한 문장을 깊이 다 여기서 설명하기엔 너무 무리다.
궁금하신 분들은 '통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김용옥님의 <석도화론>을 참조하시길.)

여기서 <파르지팔>과 연관해 중요한 건 "통나무는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흩어지지 않은 통나무란, 바로 무법(無法)의 세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無가 侑의 반대말로 해석되어선 안된다.
파르지팔이 순수한 바보지만, 그것이 타락한 지식인의 반대말이 아니듯이 말이다.
이것은 흩어짐, 즉 변화의 가능성 - 열려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흩어지지 않은 통나무의 상태에선 그 모든 <경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법,
선과 악도 구분되어 있지 않으며, 이름도 없으며, 형태도 없는 바로 無의 세계인 것이다.
파르지팔도 처음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몰랐다.
파르지팔이 성배의 성으로 들어간 것은 말하자면 통나무가 흩어지는 순간과 비교가 된다.
그는 성배의 숲에서, 성배의 성에서, 마법의 정원에서, 쿤드리의 입맞춤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흩어지게 된다.

석도는 이 흩어짐이 일획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일획이 뭇존재와 만물의 뿌리요, 근본이라 하였다.
이것이 궂이 화론에만 그치는 사고는 아니라고 본다.
석도도 그런 뜻으로만 이 문장을 쓴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이렇게 한번 긋는 행위에서 나온다.
한번 그음, 즉 일획은 만획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석도는 이 말로서, 예를 들어, 화가가 붓으로 한 획을 그을 때,
괜히 가벼운 번지기 효과같은 것을 자신의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착각하여
그 안에서 그럴싸한 듯 사기치지 말고,
한 획에 자아의 모든 것을 담아 그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번지기 효과가 사기란 얘기는 아님 ^^)
암튼 그렇다 치고, ...
파르지팔은 이렇게 자기에게 일어나는 흩어짐의 상황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그의 흩어짐의 과정을 통해
그는 결국 일획을 세울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일획, 그것은 큰 획.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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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룽? 또는 니벨룽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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