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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수 (2002-10-26 12:39:53, Hit : 5048, Vote : 768
 루트비히2세, 롤라 몬테즈, 그리고 바그너

안녕하십니까.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der로 한것은' 은 des를 잘못 쓴 것입니다. 글쎄, 제가 쉰세대이고 보니 이걸 수정하느라고 두번이나 시도하다가 모두 잘못 입력했지 뭐예요. 운영자님께서 중복된 답변을 모두 삭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죄송해요. 다음은 루트비히2세와 롤라 몬테즈 그리고 바그너에 관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어 몇자 적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에게 흠뻑 빠진 것이 자신의 할아버지 루트비히 1세가 롤라 몬테즈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과 여러모로 비교됩니다. 롤라 몬테즈는 수 개 국어에 능통한 집시 출신의 댄서이자 배우였지요. 그녀는 출중한 미모와 뛰어난 사교술로 위고, 발작, 듀마, 들라크루아, 쇼팽 등 당대의 명사들과 친교를 나눈 예능인이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에게 바친 사랑은 루트비히가 1세가 롤라에게 바친 사랑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군주 모두 특정 예술인에 대한 관심도가 지나쳐 재정 손실이 컷으며 이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여 모두 폐위되었습니다. 또한 그들 서로에 대한 관계와 행적도 판에 박은 듯이 흡사했습니다. 참고로 탐미적인 영상 연출로 유명한 프랑스 감독 막스 오필스는 롤라의 파란만장한 생애에 흥미를 느껴 1955년 롤라 몬테즈(Lola Montes)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루트비히 2세는 어려서부터 민담과 전설 등에 흠뻑 빠져 있었던, 말하자면 몽상가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지요. 그는 군주가 아니라 차라리 대부호의 신분이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41세의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가 죽은지 3년째 되던 해인 1886년, 호헨쉬반가우 성곽 인근에 있는 슈타른베르크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는데 공식적으로는 정신 질환에 의한 자살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가까이 지켜보았던 그의 종매 엘리자베트 루트비히는 “루트비히 2세가 광인이 되어 자살했다는 것은 악의에 찬 소문일 뿐이며 그의 자살 원인은 단지 고독을 이기지 못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바그너가 죽고 난 이후에는 무척 고독해 했을 뿐만 아니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 정도는 심각해서 침식을 거를 때도 잦았으며 가끔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인근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몽상가인 그는 거기서 바그너의 악극 세계로 어서 들어오라는 라인의 세 처녀가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었음직도 합니다. 혹은 일렁거리는 물살을 뚫어
지게 바라보는 동안 어느덧 물위에 비치는 바그너의 얼굴을 보았을지도 모르고요. 그 즈음 루트비히 2세는 실권을 빼앗긴 상태였는데 유력한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자살한 것이 아니고 타살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측근들이 군주로서의 기대를 저버린 그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꾸민 것이라고도 하고 당시 통일의 주도권을 잡은 프로이센 왕국이 가장 영향력이 컷던 바이에른 왕국을 쉽게 병합하기 위해서 권력의 상징이던 루트비히 2세를 암살했다고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바그너와 물과의 인연이 새삼 생각납니다. 그가 청년 시절 뱃길 여행 때 폭풍우를 만난 것이라든지, 라인강으로부터 예술의 영감을 얻은 것이라든지, 스위스의 루체른 호반에 위치한 트리브셴에서 코지마와 신혼 생활을 즐긴 것이라든지 또한 바이로이트 극장을 처음에는 물위에 세우려고 계획한 것도 그렇지만 1872년 5월 22일 그의 69세 생일 때 거행한 극장의 정초식 날이 하필이면 폭우가 쏟아진 것도 묘한 인연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역시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죽어 곤돌라를 타는 것으로 장례 운구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요. 그래서 만일 루트비히 2세의 우울증이 중증이었다면 차라리 바그너 귀신이 나타나 그를 물로 끌어들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바그너 음악은 영화에서 자주 인용되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나니 바그너와 물과의 인연을 영화에서 빗댄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1930년대 미국 코미디계를 주름잡은 마르크스 형제가, 물론 이들은 칼 마르크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희극 배우 5형제입니다만, 1939년에 만든 ‘서커스(At the Circus)‘ 란 영화에 3형제가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비디오로 보았는데 그 장면은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부분이기도 하지요. 내용은 어느 부유한 미망인이 저택 부근에 있는 호수 가에 커다란 연주대를 띄워놓고 여기서 연주하는 바그너 음악을 손님들과 함께 감상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이를 안 친지들이 적자에 허덕이는 서커스단을 그녀 몰래 정원에 풀어 공연을 하도록 합니다.
귀부인은 친지의 계략에 꼬여 바그너 음악 연주회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손님들은 넋을 잃고 서커스를 구경하지요. 그렇게 하는 동안 서커스 단원 한 사람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연주 시작 전갈을 보낸 후 짓궂게도 연주대와 육지를 연결한 밧줄을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탄호이저’서곡은 신명나게 울려대고, 악단원들을 실은 물위의 연주대는 육지와 점점 멀어져 가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오직 연주에만 열중한 채 방
랑하는 네델란드인처럼 정처 없이 호수가 저 멀리 사라져 갑니다.
생각해 보면 바그너는 물보다 불에 각별한 상징과 의미를 부여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반지 4부작 중 ‘신들의 황혼’편에서 브룬힐터가 불 속에 뛰어드는 희생 장면에 음악적으로 가장 장엄하고 감동적인 정서를 표현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니벨룽의 반지’에는 불을 뿜는 용, 발할라 성, 대장간 등 불과 관련한 동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불은 물과 상극이 아닙니까. 바그너와 물의
인연을 이 악극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때 역설적이기보다는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불과 물은 생명의 두 원천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든지 화산과 홍수로 변하여 인류의 종말을 가져오는 두 가지 재앙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니벨룽의 반지’에는 잃어버린 황금이 라인 강으로 돌아오고 브룬힐터가 불에 뛰어들어 희생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이것은 불과 물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의미를 한데 아울러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실 지구에 화산 활동과 폭풍우 현상이 없다면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재해는 존재하지 않지만, 더 이상 살아있는 지구가 아니죠. 그런 점에서 바그너의 악극 세계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의 가면을 바꾸어 쓰고 있는 같은 얼굴입니다.
혹시 살기 위해 죽는다는 역설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비근한 예로 생계를 위해 바다로, 또는 지하 갱도로 향하는 사람들, 험준한 산을 오르는 알피니스트와 싸움터로 나가는 군인들, 바로 이들의 모습에서 삶과 죽음의 두 얼굴을 봅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희생이며 삶은 의미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한 절차인 것입니다. 바그너의 악극이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보다 특별히 장엄하고 서사적이며 철학적인 것은 이처럼 삶과 죽음에 대하여 깊은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1973년에 연출한 장편 영화 ‘루트비히 2세’를 보면 루트비히 2세와 바그너의 애증 관계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심 인물은 루트비히 2세로 로맨티스트의 면모보다는 예술과 공상에 집착하는 광기의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영화 분위기는 어둡고 장중하여 마치 ‘신들의 황혼’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모로 보아 바그너는 20세기 후반을 장식한 문화의 타이쿤이면서 로맨티스트였습니다.





오랫만에 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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