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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와산방 (2002-02-20 15:46:10, Hit : 2328, Vote : 506
 ★★ 파르지팔은 바보인가?

2000/05/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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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지팔의 성격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자.
파르지팔의 설정은 그의 이름에서와 같이 순진한(Parsi) 바보(Fal)이
다. 여기서 순진하다는 것은 천성이 천사처럼 맑고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혼백(魂魄)이 순수(純粹)하여 그렇게 불려졌던 것이
아니고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백지
(白紙) 같은 상태라는 의미의 순진(純眞)이다. 나쁘게 해석하면 무
식(無識)한 것인데, 파르지팔은 결코 바보는 아닌 것이다. 우리말
의미의 바보라면 가르켜도 어쩔 수 없는 모자라는 사람의 듯이지만
파르지팔은 단순히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의 이름이 뜻하
는 순진한 바보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성격의 변신을 가능하도록 한 초기설정인 셈이다.

이 파르지팔의 성격(性格)은 2막에서 쿤드리와의 키스를 통해서 갑자
기 얻은 깨달음을 통해 변화(變化)된다. 극에서는 이 장면에서 쿤드
리와의 키스를 통해서 전에 암포르타스가 동일 행위를 하다가 클링조
르에게 당하여 평생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고 언급(言及)되어 있는데
파르지팔은 같은 상황(狀況)의 그 결정적인 순간(瞬間)에 암포르타스
의 고통을 깨닫게 되고, 파르지팔이 암포르타스와 달리 찰라적인 깨
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그가 순수한 바보이기 때문이라는 설정(設定)
이다.

1막에서 잠시 나오는 구르네만츠의 회고에서 암포르타스가 클링조르
에게 당하고 성창을 빼앗기고 그 성창으로 상처를 입고 돌아와서, 다
시 속죄와 구원의 기도를 드릴때, 성배에서 빛이 나타나며 순진한 바
보만이 구원을 갖고 올 수 있다는 신(神)에 의한 계시적(啓示的), 예
언적(豫言的)인 상황(狀況)이 있다. 이 변화의 동기가 되는 장면을
위하여 처음부터 파르지팔은 바보로 설정이 되었을 뿐이며 바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1막에서 조용한 성 주위를 나르는 백조를 죽이
는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깨달음을 얻은 파르지팔은, 그때부터 바보가 아닌 것이다.

쿤드리와 긴 키스를 끝낸 후 본능적으로 깨달음을 얻은 파르지팔은
절규(絶叫)를 한다. 어찌 이 절규(絶叫)를 들으면서 그를 다시 바보
라고 부를 수 있을까. 깨달음을 얻은 파르지팔은 재차 쿤드리를 떨
쳐버리고 클링조르의 공격을 방어한다. 클링조르가 성창을 던져서
공격하나 파르지팔은 불가사의 한 힘으로 이를 받아낸다. 그리하여
파르지팔은 드디어 성창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극으로서의 요소를 볼 때 이는 비상식적(非常識的)인 발전이
라 할 수 있다. 깨달음에서 신비한 능력으로 그리고 이 극화의 최고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창을 얻는 과정까지가 모두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비상식적(非常識的)인 발전인 것이다. 물론 약간 전설적
인 요소가 가미된 극음악(劇音樂)에서의 이러한 비상식적인 발전을
다른 작품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는 있지만 이 부분에서의 유쾌(愉快)
한 극의 흐름은 아니라고 하겠다.

단절(斷絶)된 시간이 흐른 후 파르지팔은 성창을 지닌 채 다시 몬살
바트성에 다시 나타난다. 이제부터는 전에는 바보로 밖에 취급받지
못했던 구르네만츠에게서 주인으로 대접을 받고, 성 금요일에는 쿤드
리에게 세례를 준다.

여기는 그는 이미 바보의 경지는 훨씬 넘어서고 초인간적(超人間的)
인 경지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암포르타스의 고통스런 의식을
모두 쳐다보고 극적인 순간에 그를 치료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물론
성창이라는 도구을 통해서...

전체의 줄거리를 통하여 암시(暗示)되고 시도(試圖)되는 이 초인간적
(超人間的)인 현상은 파르지팔이 암포르타스의 권한(權限)을 이어받
고 모든 자에게 축복을 내리는 장면으로 마무리 되는데 이는 초기에
설정한 파르지팔의 위상(位相)을 거의 신격화(神格化)하면서 반전(反
轉)시킨 것이다.

한스 위르겐 지베르크가 제작한 동일음악(同一音樂)의 영상작품(映像
作品)에서는 파르지팔 역으로 두 사람이 등장한다. 바보 같은 파르
지팔과 깨달음을 얻은 파르지팔이 각각 다른 사람에 의해서 연기되는
것이다. 바보 같은 파르지팔의 역할은 잘생겼지만 약간은 멍청해 보
이는 남성이, 깨달음을 얻은 파르지팔의 역할은 연약해 보이지만 눈
초리가 아주 또렷한 남장여인이 이 역할을 맡아서 대조적인 두 인간
상을 보이며, 3막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두 파르지팔이 동시에 등장
하기도 한다.

이 파르지팔의 성격 하나만 파악함으로서도 바그너가 추구하려고 하
는 음악세계를 한눈에 알 수가 있는 것이다.







★★ 쿤드리의 변화
★★ 음악가로서 바그너의 위상(位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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